중국 지린성 경학사 본부 터

경학사(耕學社)는 일제 침략 시기 망명 민족운동가들에 의해 지린성(吉林省) 류허시엔(柳河縣) 삼원포(三源浦)에 설립된 서간도 최초의 한인자치단체다. 1910년 경술국치를 전후한 시기 국내에서의 국권회복운동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신민회(新民會) 회원 중심의 민족운동가들은 국외로 망명하여 독립군기지를 개척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 계획에 의해 개척된 곳이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 지역이었고, 이를 적극 추진하고 실천한 인물들은 이회영(李會榮)·이시영(李始榮)가의 6형제와 이상용(李相龍)·김동삼(金東三)·이동녕(李東寧)·김창환(金昌煥)·여준(呂準)·주진수(朱鎭洙) 등이었다. 이들 망명 민족운동가들은 국내외 각지에서 청·장년을 비롯한 이주를 희망한 한인을 모아 이 지역을 적극적으로 개발할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1911년 4월에 류허시엔 삼원포 대고산(大孤山)에 이주한인 300여 명을 모아 군중대회를 개최하여 첫째, 민단적 자치기관의 성격을 띤 경학사를 조직할 것, 둘째, 전통적인 도의에 입각한 질서와 풍기를 확립할 것, 셋째, 개농주의(皆農主義)에 입각한 생계방도를 세울 것, 넷째, 학교를 설립하여 주경야독의 신념을 고취할 것, 다섯째, 기성군인과 군관을 재훈련하여 기간장교로 삼고 애국청년을 수용하여 국가의 동량인재를 육성할 것 등 5개항을 결의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조직된 경학사는 내무·농무·재무·교무 등 4개 부서를 두었다. 그리고 초대 사장에는 이상룡이 초대되었으며, 내무부장에 이회영, 농무부장에 장유순, 재무부장에 이동녕, 교무부장에 유인식(柳寅植)이 임명되었다. 이러한 조직과 결의사항을 본다면 경학사는 민단적 성격의 자치기관이라 할 수 있다. 사장인 이상용은 「경학사취지서 ( 耕學社趣旨書)」를 발표하여 조국광복의 방략을 천하에 표명하였다. 이후 부민단이나 한족회 모두 경학사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경학사는 민생과 교육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였다.
현재 마을이 새롭게 조성되어 당시 경학사가 있었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어렵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201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