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시 옛 강경성결교회

옛 강경성결교회는 최초의 개신교 한옥 예배당으로 2002년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옛 강경성결교회는 출발부터 일제 식민 통치와도 연관되는데, 1919년 3월 20일 존 토마스(영국) 선교사가 강경에 와 교회 부지를 돌아보고 있었는데, 이날은 강경 3.1 만세 시위가 있던 날, 시위대를 쫓던 일본 순경들이 선교사를 미국의 스파이로 오인하고 심하게 구타하고 연행하였다. 이 사건으로 일본과 영국의 외교 분쟁까지 일어나 일본은 토마스에게 5만불 배상금을 지불하였고, 이 자금의 일부로 1924년 교회 건립하게 되었다.

예배당은 전면 4칸, 측면 4칸으로 지어졌는데. 한옥이지만 교회 기능에 맞게 정방형 평면으로 지어 건물의 조형성이 전통적 비례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정면 입구에 2개의 출입문을 설치해 남자와 여자가 따로 출입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유교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기독교의 토착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강경성결교회의 교인들이 관련된 1924년 강경공립보통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신사참배 거부는 최초의 신사참배 거부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1926년 강경성결교회 신도 윤판석이 주도한 상애소년단 학생들의 일본 역사 수업 거부 투쟁도 최초의 사례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도 강경성결교회는 일제강점기 강경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 202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