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6월 17일 전라남도 무안군 암태면 기동리에서 태어났다. 7세부터 18세까지 고향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동학 계열 신종교 중 하나였던 제우교(濟遇敎)를 믿었다. 29세였던 1913년 암태면장에 임명되어 1919년 11월까지 그 직을 유지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인 그해 11월 면장직을 사임하였다. 서태석은 만세운동 1주년을 맞아 1920년 3월 29일 태극기를 목포 송도공원과 철도정거장 등에 붙이고 ‘대한독립기념 축하 경고문’을 목포 시내에 살포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20년 12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후 농민운동에 참여하여 1923년 암태소작인회를 결성하고 그 위원장이 되어 암태도 소작쟁의를 지도, 암태도 소작쟁의를 승리로 이끌었으나, 1924년 9월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6년 말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전라도 대표 및 선전부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9월에는 조선농민총동맹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하다가 이듬해인 1928년 4월 붙잡혀 3차 투옥되었고, 1930년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0년대 후반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다가 1943년 6월 사망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 202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