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의병은 1906년 3월 청양군 정산면 천장리에서 봉기하였으나, 청양 합천전투에서 크게 패했다. 이후 홍주의병은 5월 9일 부여의 지티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민종식을 다시 대장에 추대하고, 부대를 정비한 후 5월 13일 서천 관아를 점령하였다. 이들은 남포읍성 전투에 성공하여 병사를 의병에 귀순시키는 등 의병을 모집하면서 5월 19일 홍주읍에 들어와 홍주성을 점령하였다. 민종식은 이후 천제를 지내고 의병의 편제를 보강하였다. 아울러 인근의 각 군수에게 훈령을 내려 양식과 군기의 징발과 모병을 지시하였다.
일본군은 5월 20일부터 여러 차례 홍주성을 공격하였다. 그럼에도 전세가 불리하게 되자,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하세가와 요시미치에게 명령을 내려 조선주차군 제60연대의 보병 2개 중대와 기병 반개 소대, 그리고 전주수비대 1개 소대를 파견하여 홍주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 결과 홍주의병은 5월 30일 밤부터 시작된 일본군의 공격으로 이튿날 새벽 결국 채광묵(蔡光默) 부자 등 3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채 패퇴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홍주의병 80여 명이 체포되었으며, 그 중에서 유병장(儒兵將) 류준근을 비롯하여 9명은 대마도에 유배되기까지 하였다.
* 홍주성은 1972년 10월 14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31호 홍주성(조양문, 아문, 산성)으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7월 28일 홍성 홍주읍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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