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이천시 이선룡 의거지 - 옛 동일은행 장호원지점

이선룡(李先龍, 1910.8.20.~?)의 본적은 경기도 이천군 청미면(지금의 장호원읍) 장호원리 70이고, 태어난 곳은 여주군 강천리이다. 장호원공립보통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다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퇴한 뒤 장호원 자동차부 견습생으로 일하였다. 1927년 이복형 이용기를 따라 만주로 건너갔으며1928년 4월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만주에 있던 항일독립운동단체 정의부(正義府)에 가입하여 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4월 정의부가 국민부로 통합되자 국민부 산하 조선혁명군 소속 독립군이 되어 군사훈련을 받고 2년간 활동하였다. 1932년 2월,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징발하라는 총사령관 양세봉의 명령을 받고 경성을 거쳐 고향인 장호원으로 잠입하였다. 1932년 3월 말, 장날이어서 사람들로 붐비는 틈을 타 동일은행 장호원지점을 단신으로 습격하여 거금 1만 3천여 원을 빼앗았다. 경찰 병력만 연인원 6천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추격대가 동원되어 추격하자, 이선룡은 도피하다가 일본인 순사 1명과 조선인 순사 1명에게 권총을 발사하여 중상을 입히기도 하였으나 결국 일본 수색대에 의해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1932년 4월 선고 공판에서 ‘강도살인 미수, 치안유지법위반, 총포화약취체규칙 위반’혐의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후에 감형되어 9년 7개월간 복역하고 1941년 11월 16일에 출감하였다. 그 후 고향에 들러 만주로 간다고 떠난 후 소식을 알 수 없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촬영일 202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