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환(曺成煥, 1875~1948)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출신으로 군 부패 개혁을 주도하다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다. 1907년 신민회를 조직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2년 일본 총리대신 카쓰라[桂太郞] 암살계획을 세웠으나 사전에 발각, 체포되어 거제도에 1년간 유형되었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부 차장, 1919년 4월 노령지역 대표의원으로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과 군무부 위원이 되었다. 1919년 12월 북로군정서로 군사부장에 취임하고 청산리전투에 참가하였다. 1925년 신민부 외교위원장이 되고, 성동사관학교의 고문으로 독립군 양성에 노력하였다. 1936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군무총장이 되었으며, 1937년 한국광복전선 결성에 참가하고, 193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에 피선되었다. 같은 해 11월 임시정부 군사특파단장으로 시안[西安]에 파견되어 한국광복군 창설에 기여하였다. 1941년 대원수부의 막료로 군무부장에 임명되었고, 다시 최고원수부의 판공처장에 임명되었다. 1945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한 뒤 한국장교단장, 대한독립총회위원장, 성균관부총재 등을 역임하였다.
* 조성환 생가
1984년 1월 14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가전(家傳)에 따르면 고종 때 이조 판서를 지낸 조석우(曺錫雨)가 창건 하였다고 한다. 지붕 수리 공사 중에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 1753년(영조 29년)에 건립된 것이 확인되었다. 전체적인 주택의 배치형식은 사랑채가 안채를 가로막고 서있는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대문은 원래 바깥 행랑채에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바깥 행랑채가 헐려 남아있지 않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촬영일 202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