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고종 퇴위, 정미7조약 체결, 군대 해산 등의 일제의 한국침략정책이 연이어 벌어지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 창의했다. 원주 지역에서는 1907년 8월 5일 원주진위대 특무정교 민긍호를 중심으로 원주진위대의 봉기가 시작되었고 이는 정미의병의 신호탄이 되었다. 당시 항일부대 의 규모는 원주·평창·영월 지역의 구식 군대와 해산 군인 중 일 부를 포함하여 400여 명 정도였으며, 이들을 모아 의병진을 구성하였다. 이들과 함께 병력과 무기를 얻은 이강년은 1907 년 8월 13일 원주군 신림면 신목정에서 전국의 40여 의병진과 함께 전국연합 의병부대 창설에 합의하였다. 호좌의진 도창의대장에는 이강년, 전군장에 윤기영, 중군장 김상태, 우군장 이중봉, 후군장 신태원, 선봉장 백남균, 독권장 이만원 등 각 기 독립된 연합부대를 편성하였다. 호좌의병은 8월 15일 민긍호·박여성·오경묵·정대무 등이 참여한 약 2천여 명으로 연합 의진을 편성하여 제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어 8월 23일 충주 전투, 9월 7일 문경 갈평전투 등에 참가하여 많은 수의 일본군을 사살 또는 생포하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촬영일 202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