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춘천시 윤희순 생가 터

윤희순(尹熙順, 1860~1935)은 서울 출신으로 의병장 유홍석(柳弘錫) 며느리이다. 단발령 후 시아버지 유홍석이 강원, 충청 지방에서 의병활동을 벌이자 시아버지를 따라 출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유홍석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집안에 제단을 쌓아놓고 시아버지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의병들에게 식사와 식량을 제공하였고, 한글가사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북돋고 아녀자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했으며, 일제의 한국침략을 규탄하였다.
1907년 8월 춘천 남면 가정리의 유홍석이 인근의 족숙 유중악(柳重岳) 등과 모의하여 가정리 황골에서 의병 600여 명을 모집하여 춘천 진병산, 가평 주길리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때 윤희순은 인근에서 의병군자금을 모금하여 가정리 여의내골 주산에 무기와 화약을 제조하는 병기창을 차렸고, 아녀자 30여 명과 함께 고된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의병들의 식사와 빨래를 담당하였다.
경술국치 다음해인 1911년에 온 가족과 함께 일본군의 탄압을 피해 유홍석을 따라 만주로 건너갔다. 1912년에 반일인재 양성이 국권회복의 지름길이라는 신념에 따라 유인석, 유홍석의 지시 하에 환인현 일면성에 노학당(老學堂)을 세웠다. 이후 교장직을 맡아 동포들에게 학교운영비를 모금해 가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폐쇄되기 전까지 노학당에서 50여 명의 반일인재를 양성하였다.
1913년 시아버지 유홍석, 1915년 유인석과 남편 유제원이 돌아가자 아들 유돈상과 함께 독립군을 돕는데 헌신하였다. 유돈상이 음성국, 음성진 등과 함께 조선독립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벌이자, 병농일치론에 따라 낮에는 군사훈련을 하고 밤에 공부하는 조선독립단 학교에서 국권회복과 반일투쟁에 대한 강의를 하였으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1935년 유돈상이 일제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사망하자 11일 만에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