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 당한 틈을 이용하여 일본군은 1940년에 베트남 북부, 1941년에 베트남 남부(당시는 코친차이나라 불렀음)에 각각 진주, 프랑스 식민지 정부와 함께 인도차이나를 공동으로 통치했다. 하지만 일본군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수립할 목적으로 1945년 3월 쿠데타를 일으켜 프랑스 식민지 정부를 전복하고 단독으로 통치를 시작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수행하는데 인도차이나를 식량 공급기지로 삼았다. 따라서 가혹한 쌀 수탈이 이어졌고 군수 물자 중 하나인 황마 재배를 위해 논을 밭으로 바꾸기도 했다. 1944년 말부터 자연 재해가 빈발해 쌀 작황이 나쁜 데다가 미군 공습에 의한 수송로와 수송 수단 차단으로 식량 수송마저 원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1945 베트남 기근’이 발생해 큰 피해가 발생한다. 특히 베트남 북부에서 기근의 피해가 심각했는데, 이 시기 굶어 죽은 주민이 2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4년 3월 19일 박닌의 다우사원 내 일본군 식량창고를 베트민과 주민들이 습격한다. 베트민은 쌀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준다. 기근이 이어지는 동안 베트민은 곳곳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민중들에게 베트민을 구원자로 보이게 해 베트민이 민심을 얻는데 중요하게 작용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202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