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전선에서 패한 연합군 2,000여 명이 수용되어 있던 포로 수용소이다. 앵글로색슨계의 몸체가 필요했던 일본 군의관 731부대는 포로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했다.
일제는 1943년 포로들을 효율적으로 관리·감독·활용하기 위하여 만주공작기계주식회사 동쪽에 새로운 포로수용소를 건립을 계획했다. 같은 해 7월 29일 펑티엔시 대동구에 선양2전맹군전부영(沈陽二戰盟軍戰俘營)이 건립됐다. 포로수용소의 면적은 5만 제곱미터(㎡)였으며, 시멘트와 자갈의 혼합형태의 건축물이었다.
포로수용소 동북쪽에는 일본군이 거주하였으며, 포로들을 감시할 수 있는 체제를 완비했다.1942년에 전체 포로의 수는 1341명이었으며, 다음해에는 1271명으로 약간 감소하였다. 이는 가혹한 노동과 탄압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였음을 의미한다.1944년과 1945년에는 숫자가 계속 증가하였으며, 국적으로는 1942년에는 미국과 영국군만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지만, 1943년부터는 호주·캐나다·네덜란드 군인들도 수용되었다. 숫적으로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주로 포로수용소 1호와 부속건물이 있다. 일본군 포로 수용소·병원·구치소와 보일러실 굴뚝 등이 급수탑이다. 선양시는 옛터에 진열관과 ‘사난자(死難者) 비석 벽’을 새로 만들었다. 비벽에는 전쟁 포로수용소에서 숨진 연합군 병사 2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2018.5)